사과 밭떼기 매입의 추억, 2000평 과수원 계약부터 반전의 선별 작업까지
봉화농협에서 경제상무로 일하던 시절, 사과 농사철이 되면 산지 현장은 늘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농협 직원이 품목을 직접 계약하고 매입하는 ‘밭떼기(포전 매매)’ 거래는 농민들에게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을 한 번에 보장받는 중요한 기회였고, 우리에게는 마트 납품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핵심 업무였다. 어느 가을날, 한 통의 다급하면서도 간절한 전화 한 통이 걸려오면서 잊지 못할 2000평 규모의 대형 사과 밭떼기 거래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그날의 흥정 과정부터 수확 후 마주했던 반전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았던 농협 맨으로서의 진짜 보람을 풀어내고자 한다.

1. 길가에서 쳐다본 2000평 사과밭과 1억 원의 흥정
농민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경제과장과 함께 곧바로 차를 몰아 해당 과수원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 마주한 사과밭은 규모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려 2000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 약간 경사진 지형을 따라 펼쳐진 사과나무들에는 온통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멀리서 길가에 서서 쳐다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 정도로 농사가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었다.
밭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상품 가치가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밭주인인 농민과 마주 서서 곧바로 가격 흥정이 시작되었다. 주인장은 이 정도 작황이면 1억 2천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마트 납품 단가와 수확·선별 비용을 고려했을 때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경제과장은 조금 비싸다는 난색을 표하며 가격 조정을 시도했고, 치밀한 눈치 싸움 끝에 주인장이 한풀 꺾이며 “그럼 1억 원에 다 가져가라”고 최종 제안을 던졌다. 서로 간의 타협점이 맞춰지면서 2000평 밭떼기 거래는 그 자리에서 전격 성사되었다.
2. 수확 후 땅에서 마주한 반전과 색깔의 진실
계약을 마치고 며칠 뒤, 본격적인 사과 수확 작업에 돌입했다. 2000평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사과를 대거 수확해 우리 농협 저온창고로 입고시키고, 본격적인 선별 및 포장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길가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때 볼 때는 햇빛을 받아 온통 붉고 완벽해 보였던 사과들이었다. 과수원 바닥마다 사과 착색을 돕기 위해 반사필름까지 꼼꼼하게 깔아둔 터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사과를 수확해 땅바닥에 내려놓고 냉장창고에서 면밀히 선별 작업을 해보니 생각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쪽에서 볼 때는 새빨갛게 보였던 사과들이, 막상 나무 아랫부분이나 그늘진 곳에 있던 것들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색이 덜 난 미숙과나 착색 불량인 것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나무에 달린 채로 볼 때와 땅에 내려와서 객관적으로 마주할 때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전체적인 품질 자체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어서 바이어 기준에 맞춰 분류 작업을 거치고 최종 판매 정산을 마쳤다. 결과적으로 장사로 치면 남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적은, 간신히 손익을 맞춘 수준이었다.
🌱 봉화농협 34년의 현장 통찰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풍경만 믿고 덜컥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 그것이 바로 농산물 유통 현장이 가진 가장 무서운 함정입니다. 길가에서 올려다본 2000평의 사과밭은 온통 붉은 낙원 같았지만, 막상 상자에 담겨 창고 불빛 아래로 내려온 사과들은 저마다의 그늘과 부족함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유통이란 환상을 사는 일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버텨내는 일입니다. 비록 남는 마진이 적어 씁쓸할지라도, 그 냉정한 검증의 과정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것조차 현장 전문가가 지불해야 할 마땅한 수업료이자 진짜 실무의 진면목이었습니다.
계산서 너머에 남았던 농민의 웃음과 일하는 보람
수지타산을 따져보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는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법도 했다. 하지만 그 거래가 내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과를 모두 정리하고 정산이 끝난 뒤, 밭주인이었던 그 농민이 내 손을 꽉 잡으며 거듭 고맙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판로를 걱정하던 차에 한 번에 밭을 비우고 제값을 챙길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는 진심 어린 인사였다.
그 순간, 비즈니스 계산서의 숫자보다 사람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농협에 몸담고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농민이 땀 흘려 키운 농산물을 제값에 팔아주고, 시름에 찬 농가에 숨통을 터주어 결국 농민이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현장 경제상무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였다.
💡 [작성자 코멘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언제나 장부상의 이익만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2000평 사과 밭떼기 거래는 수익 측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아쉬운 계약일 수도 있지만, 그 끝에서 농민이 건네준 따뜻한 손길과 진심 어린 감사 덕분에 제 34년의 농협 생활 중 가장 값진 보람으로 남았습니다. 셈법을 넘어 사람을 남기는 유통, 그것이 바로 제가 현장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핵심 요약
- 2000평 규모의 경사진 사과 과수원을 길가에서 둘러보고 1억 원에 밭떼기 매입을 성사시켰던 흥정 과정을 회고했습니다.
- 수확 후 냉장창고에서 선별 작업을 할 때 비로소 드러난 착색 불량과 마진의 현실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 이익을 떠나 수확을 마친 농민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통해 농협 직원이 느끼는 참된 보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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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께서는 비즈니스나 일상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마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사람과의 신뢰나 보람이 더 크게 남았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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