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고춧가루 공장 홈쇼핑 판매 1위 달성기: 적자 방송을 밀어붙여 신뢰를 만든 현장의 판단
도입: 판로가 막힌 고랭지 고추의 현실과 홈쇼핑의 벽
농산물 유통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재고와 판로 부족이다. 2019년 농협봉화군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로 부임했을 때, 우리 앞에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혀 있었다. 경북 봉화는 대표적인 고랭지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북쪽에 위치한 특성상, 남쪽 지역인 전라도 등 타 지역에 비해 고추 출하 시기가 한 달 가까이 늦었다.
출하가 늦어진다는 것은 시장에서 이미 타 지역 물량으로 수요가 채워진 뒤에야 명함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판매 부진은 불 보듯 뻔했고, 당시 홈쇼핑 방송 지원 사업 보조금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4회 지원에 1,500만 원 기준, 1회당 750만 원이 지원되는 구조였지만 우리는 이마저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4번 중 3번만 방송한 뒤 마지막 한 번은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판매처가 아예 없어 수도권 대형 농협하나로마트 판촉에 매달려 겨우 성남, 고양, 수원, 양재, 창동 등에 입점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상황: 인지도 부족과 악순환의 늪
부임 초기의 홈쇼핑 도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다음 해에는 방송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적극적으로 편성을 잡으려 애썼지만, 시장에서 인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으니 홈쇼핑사 측에서 우리를 반길 리 없었다. 방송을 잡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내부 직원들조차 홈쇼핑 방송에 대한 인식이 낮아 소극적이었다.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 해도 실적이 나오지 않으니 방송 횟수를 채우기 버거웠고, 방송을 해봐야 적자가 나거나 마진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되었다. 당시의 현장은 “방송을 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패배주의가 은연중에 퍼져 있던 시기였다.
내가 한 판단: 보조금에 연연하지 않고 판을 뒤흔들다
상황을 분석한 끝에 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지원금이나 보조금에 신경 쓰지 마라. 일단 방송을 무조건 잡아라.”
당장의 손해를 무서워하면 영원히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보조금에 목을 매면 그 테두리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고, 결국 홈쇼핑사에게 ‘매력 없는 브랜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보조금 정산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성 횟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예상대로 보조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그다음부터는 온전히 자체 자금으로 홈쇼핑 방송 비용을 감당해야 했다. 솔직히 적자가 나는 방송도 적지 않았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한숨이 나오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묵묵히 밀어붙였다. 홈쇼핑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단기 손익이 아니라 ‘꾸준히 방송하는 브랜드’라는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행과 시행착오: 방송사의 제안, 그리고 숨겨진 유통의 비밀
나의 뚝심은 서서히 성과로 나타났다. 해가 거듭될수록 NS홈쇼핑 단 한 곳에서 시작했던 방송이 이듬해 홈앤쇼핑으로 확대되었다. 꾸준히 방송을 이어가자 인지도가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현대홈쇼핑을 메인으로 삼고, 공영홈쇼핑과 홈앤쇼핑까지 방송 영역을 공격적으로 넓혀 나갔다.
어느 정도 브랜드 인지도가 쌓이자, 이제는 우리가 아쉬운 소리를 하며 방송을 잡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 쪽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송비를 따로 받지 않는 대신, 판매액에 비례해 수수료율을 높이는 조건으로 방송을 진행합시다.”
당시에는 우리에게 방송비 부담을 덜어주는 파격적인 제안처럼 보여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나중에 유통 구조의 생리를 파헤치고 나서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방송비를 우리가 내는 시간대는 상대적으로 매출이 잘 안 일어나는 한가한 시간대였고, 방송비가 없는 조건은 홈쇼핑사 입장에서도 확실하게 매출이 크게 일어나는 골든타임에 배치하여 홈쇼핑사도 높은 수익을 올리는 구조였다.
방송 구조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송비가 없다”는 말에만 현혹되어 뛰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프라임 타임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버튼이 폭발적으로 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과: 13톤 완판과 홈쇼핑 판매 1위라는 기적
내가 퇴직하던 2024년, 우리가 일궈낸 성과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현대홈쇼핑 단 1회 방송에서 고춧가루가 무려 13톤이나 판매되는 역사를 썼다. 고구마말랭이 역시 단 한 시간 만에 2만 2천 근이 완판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방송이 끝난 직후, 우리 상품을 담당하던 판매 벤더사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몹시 떨리고 상기되어 있었다.
“대표님! 우리가 드디어 홈쇼핑 1위 달성했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판로가 없어 하나로마트를 전전하며 보조금 4회도 다 채우지 못해 쩔쩔매던 봉화 고랭지 농협이, 대한민국 홈쇼핑 고춧가루 시장의 정점에 선 것이다.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금을 투입하며 신뢰를 쌓아온 몇 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배운 점과 현장의 교훈
단기적인 적자를 무서워하면 장기적인 기회를 절대 잡을 수 없다. 초기의 손해는 시장 진입을 위한 ‘수업료’이자 ‘투자’다.
보조금이나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자립할 수 없다. 스스로 자금을 태우고 부딪혀야 시장에서 진짜 내 실력과 인지도가 쌓인다.
유통 플랫폼의 구조(수수료 체계, 황금 시간대, 방송사 의도 등)를 정확히 파악하고 협상해야 승리할 수 있다. 무조건 공짜라고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구조를 읽는 눈이 필수적이다.
핵심 요약
2019년 부임 당시 봉화 고랭지 고추는 출하 시기가 늦고 인지도가 낮아 홈쇼핑 보조금조차 다 쓰지 못하고 포기할 정도로 판로가 막혀 있었다.
보조금에 연연하지 않고 자체 자금으로 적자를 감수하며 방송 횟수를 밀어붙여 홈쇼핑사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신뢰를 쌓았다.
결국 현대홈쇼핑, 홈앤쇼핑, NS홈쇼핑 등으로 영역을 넓혀 2024년 1회 방송 고춧가루 13톤 완판을 기록하며 홈쇼핑 판매 1위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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