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이 무조건 진하면 좋은 고춧가루일까? 우리가 몰랐던 오해와 진실
들어가며: 마당의 태양초 기억과 연탄방의 추억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고춧가루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은 단연 붉은 빛깔이다. 왠지 색이 아주 진하고 검붉은 기운이 돌면 “고추가 잘 익어서 매운맛이 진하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된다. 고춧가루는 색이 곧 품질이라는 인식이 오랜 세월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예전에는 마땅한 건조 시설이 없어 온 가족이 마당이나 길가에 고추를 널어 말리곤 했다.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정마다 전기 건조기가 보급되었고, 날씨에 의존해야 하는 전통 태양초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집 안의 빈방에 연탄불을 피워 고추를 말리기도 했다. 연탄불을 갈러 들어갈 때마다 온몸을 감싸던 뜨거운 열기와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6년 동안 농협봉화군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이사로 재임하며 고추종합처리장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 고추가루의 색깔에 대해 막연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고추를 수매하고 건조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알게 된, 고춧가루 색깔에 얽힌 진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말만 태양초’인 현실과 반양건의 비밀
사람들은 누구나 100% 햇빛에 말린 진짜 태양초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고추라고 믿고 있다. 물론 제대로 말려낸 태양초의 가치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현실의 농촌 현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고추를 수확해 며칠 동안 오롯이 햇볕에만 말리려면 날씨의 영향을 극심하게 받는다. 갑자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지속되면 고추가 썩거나 품질이 망가지기 십상이라, 농가에서는 허실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초반에 건조기를 이용해 수분을 빠르게 날린 뒤, 마지막 마무리만 밖에서 햇볕에 쬐어 완성하는 이른바 ‘반양건’ 방식을 주로 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추가 오랜 시간 열과 햇빛에 노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추 껍질이 약간 검은빛이나 거뭇한 기운을 띠게 된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고추는 약간 검은빛이 돌아야 진짜 전통 태양초이자 좋은 고추”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이다.
진짜 좋은 고추는 어떤 빛깔을 띌까?
그렇다면 검은빛이 감도는 고추가 과연 가장 우수한 품질일까? 현장에서 가공 공정을 총괄해 본 경험으로 비춰보면 이는 명백한 오해다. 거뭇한 기운이 도는 것은 건조 과정에서 열을 과하게 받았거나 자연 건조의 부작용으로 인해 색이 바래기 시작하는 현상일 수 있다.
정말로 신선하고 품질이 우수한 고건조 고추는 인위적인 변색 없이 홍고추가 가진 원래의 선홍색 빛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첨단 원적외선 저온 건조 방식 같은 기술을 적용해 단 2시간 만에 초고속으로 수분을 날려버리면, 고추가 열에 지치지 않아 껍질의 붉은 색감이 가장 찬란하게 보존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겉보기 색깔만 번지르르하게 붉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일부 중국산 고춧가루를 보면 색깔이 어찌나 곱고 진한지 국산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색깔이 붉고 화려해도 수입산 원료가 가진 한계와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넘을 수는 없다.
겉모습의 편견을 깨고 품질을 보는 눈
고춧가루를 고를 때 단순히 거뭇한 태양초의 환상에 사로잡히거나, 무조건 붉고 진한 색감에 현혹되면 진짜 좋은 제품을 놓치기 쉽다. 고추 고유의 신선한 선홍빛을 품고 있으면서도 위생적인 계약재배와 과학적인 건조 공정을 거쳤는지가 진짜 품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대표이사로 재임하던 시절, 가공 공장을 찾은 이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시각적 편견의 전환이었다. 겉포장의 화려함이나 오래된 상식에서 벗어나, 고추가 가진 본연의 색과 향을 분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우리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길러진다.
마치며: 고춧가루 색깔의 오해를 풀며
과거 건조 시설이 부족할 때는 연탄불이나 마당 건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검은빛이 돌았고, 이것이 좋은 태양초라는 오해가 생겼다.
현실적으로 많은 농가에서 허실을 줄이기 위해 기계 건조와 태양광을 섞는 반양건 방식을 쓰며, 거뭇한 색이 무조건 최고 품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짜 좋은 고추는 홍고추 고유의 맑고 선홍색인 빛깔을 유지하는 것이며, 겉보기만 붉은 일부 수입산이나 단순 시각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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