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시골 농사 추억: 소와 리어카, 그리고 경운기가 전부이던 그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취 생활을 정리한 뒤 시골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최신 트랙터와 농기계가 흔하지만, 당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트랙터는 고사하고 경운기조차 없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라고는 짐을 운반하는 리어카와 소 한 마리가 전부였다. 흙냄새 짙었던 그 시절의 농사 풍경은 가슴 한구석에 선명한 자국으로 남아 있다.

소와 리어카로 거름을 나르던 고추 농사의 시작
소 한 마리가 먹고 남은 여물을 푹 끓여 만든 거름을 잘 부숙시켜 밭으로 나르는 일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리 집 고추밭은 작은 재를 넘어가는 곳에 위치해 있어 이동하는 것부터가 큰 일이었다.
멍에를 메고 작은 재를 넘던 풍경
나는 거름을 리어카에 가득 싣고, 앞에 소에게 멍에를 씌워 혼자서 리어카를 끌며 밭으로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나보다 농사일을 훨씬 오래 해온 소는 나보다 더 능숙하게 밭길을 찾아내며 묵묵히 일을 도왔다.
본격적인 고추 모종 심기 과정
소와 리어카로 힘겹게 나눈 거름을 고추밭 골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복합 비료를 살포했다. 고랑을 정성껏 마무리한 뒤 비닐을 피복하고, 그 위에 고추 모종을 심으며 본격적인 농사를 이어갔다. 비록 몸은 고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 시절의 땀방울은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첫 경운기 구입과 좌충우돌 논밭 로터리 작업
다음 해에는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대동경운기를 한 대 구입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으며,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2천만 원이 넘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논밭을 가르며 겪었던 아찔한 순간들
경운기를 처음 사고 운전하는 임무는 젊은 내 몫이었다. 경운기로 논과 밭을 로터리 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논은 물이 차 있어 지형지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경운기를 논 한가운데 빠뜨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경운기를 건져내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곤 했다.
돌밭을 헤매며 겪은 신체적 고충
밭은 돌밭이 많아 하루 종일 돌과 씨름하며 로터리를 쳐야 했다. 커다란 장화를 신고 있었지만 사방으로 튀는 돌에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하루 종일 경운기를 몰며 돌밭을 헤매고 나면 온몸이 진동과 피로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이 끝나고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면 온몸이 너무 떨려 밥을 먹기조차 불편할 정도였다.
땀방울로 채워간 청춘의 기억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고 손은 덜덜 떨렸지만, 그 시절 젊은 난 시골에서 묵묵히 청춘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참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흙을 만지며 치열하게 보낸 그날의 기억은 삶의 큰 자양분이 되었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소의 눈망울과 부모님의 따뜻한 뒷모습이 아련하게 겹쳐진다.
자주 묻는 질문
Q1. 40년 전 고추 농사를 지을 때 주로 사용한 농기구는 무엇인가요?
A1. 트랙터나 경운기가 없던 시절이라 짐을 실어 나르는 리어카와 소 한 마리가 농사 도구의 전부였습니다. 소에게 멍에를 씌우고 리어카를 끌며 거름을 밭으로 나르곤 했습니다.
Q2. 처음 장만한 경운기로 논밭을 갈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A2. 논에서는 물과 지형지물 때문에 경운기를 논 가운데 빠뜨려 몇 번이나 건져내는 고생을 했습니다. 밭에서는 하루 종일 튀는 돌 때문에 무릎이 다치고 온몸이 떨릴 정도로 고된 로터리 작업을 겪었습니다.
Q3. 하루 종일 경운기 작업을 마친 뒤 겪은 신체적 고충은 무엇인가요?
A3. 장시간 경운기 진동과 노동을 겪은 탓에 일이 끝난 후 밥을 먹으려 숟가락을 들 때도 온몸이 떨릴 정도로 심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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